모악산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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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래불(當來佛)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머니의 품속같아라
모악산(母岳山793m)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과 완주군 구미면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전주시 남서쪽 12㎞ 지점에 위치하며, 아래로 김제평야와 만경평야가 펼쳐진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조망된다.
모악산의 경치는 봄이 압권이다. 신록이 우거지고 벚꽃이 다투어 피어나면 산의 어느 곳을 바라보아아도 모두가 솜씨좋은 화가의 화폭에 옮겨진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모악춘경(母岳春景)은 예로부터 변산하경(邊山夏景)·내장추경(內藏秋景)·백양설경(白陽雪景)과 더불어 호남의 사경(四景)으로 꼽혀 왔다. 이런 이유로 모악산은 1971년 12월 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이름이 모악(母岳)이라고 붙여진 것과 관련하여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보다는 호남평야의 젖줄인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안덕저수지와 불선제·중인제·갈마제 등등의 수원(水源)이 모두 모악산이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모악산은 강원도의 산처럼 백두대간 줄기와 맞닿아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야에서 느닷없이 솟아올라 평원을 굽어보며 젖 같은 물을 흘려 보내주고 있다. 모악산이 없으면 호남평야는 드넓지만 단 한 톨의 쌀도 생산해내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품안에 호남평야를 보듬어 않고 수유(授乳)를 해주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모악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제 평야에 젖 같은 물을 흘려보내 주는 것보다 더 모악산을 어머니처럼 여기게 만드는 요소는 그 품안에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그것을 생산한 전라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쓰이지 못하고 오랜 세월동안 이곳에서 생산만 되었지 추수가 끝나고 나면 외지로 실려 나갔었다. 그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되어서 멀리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던 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와 고구려가 국가형태를 갖춘 것은 4-5세기경이었다. 신라는 그 보다 훨씬 뒤인 6세기가 되어서야 나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었다. 신라는 후발 주자이다 보니 주변국으로부터 침략과 수탈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절취 부심하여 원수 갚을 기회를 엿보다가 무열왕 시절 김유신은 당나라와 연합하는 외교적 성공을 거두었고,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13만 대군과 김유신 휘하의 5만 군사가 물밀듯이 사비성으로 쳐들어가니 계백의 결사항전에도 불구하고 백제는 멸망하고 만다. 660년의 일이었다. 고구려는 그로부터 8년을 더 버티다가 668년에 함락되어 삼국은 마침내 신라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신라가 전승국이 된 후 패전국민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승리를 자축하는 논공행상도 필요했을 것이고, 패전국의 귀족들이 전승국 귀족들의 노비가 되는 신세를 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고구려는 신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좀 덜했을 것이지만 바로 인접해 있었던 백제는 직접적으로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하나가 쌀을 둘러싼 수탈과 갈등의 역사다.
신라의 근거지는 오늘날의 경상도나. 경상도 지방은 산이 많기 때문에 논이 적고 따라서 쌀 생산도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백제 땅인 전라도는 평야고 곡창지대다. 패전국 백제 사람들이 힘들여 쌀농사를 지으면 신라인들은 그 쌀들을 경상도로 실어갔다. 뼈 빠지게 일을 해야 남좋은 일 시킬 뿐 헐벗고 굶주려야 했던 한을 후백제를 세워서 풀어보려고 했지만 그 마저도 불발로 끝나버린 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반전의 한풀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불리 먹어볼 수도 없는 쌀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을 보내주는 모악산에 대하여 백제인들이 어머니를 대하듯 고마워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금산사는 모악산에 가람을 배치한 이래 상처받은 민중들의 한과 서러움을 어머니처럼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창건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주 충실하게 해 왔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살기가 고단하고 힘이 들 때 찾아가서 하소연하며 도와달라고 매달릴 수 있는 금산사가 거기 있기에 모악산은 이곳의 민초들에게 어머니같은 산이었을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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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선생 시비
모악산 정상
모악산에서 내려다 본 전주시
구미저수지
벚꽃이 만발한 진입로
금산사 전경
모악산에서 본 금산사 전경
미륵전
경내
부도탑 뒷편
한폭의 그림같은 모악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