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無比)스님의 初發心自警文(초발심자경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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誡初心學人文(계초심학인문) 誡初心學人文(계초심학인문) 海東沙門(해동사문) 牧牛子(목우자)
述(술)
夫初心之人(부초심지인)은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親近賢善(친근현선)하야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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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1월 22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가지고 공부할 차례입니다.
맨 처음에 우리가 인터넷 강의를 하면서 법화경을 해서 한 120여회 강의를 했고, 그 다음에 금강경이라든지, 신심명, 증도가 이런 아주 불가에서는 대단히 수준 높은 선어록이나 또 이제 대승경전을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특히 대승찬은 아는 사람은 알았지, 크게 대중화되어 있지 못한 선시인데 그것을 방송을 통해서 이렇게 강의를 하게 되었고 또 저도 덕택에 공부를 많이 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대승찬의 훌륭한 가르침을 널리 알릴 수 있어서 무엇보다도 참으로 큰 보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여러 법우님들의 덕택으로 대승찬이 잘 다듬어져서 책으로 햇빛을 보게 되어서 더욱 큰 수확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아주 승속을 막론하고 불자라면은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들, 가장 우선적으로 그 뜻을 새기면서 예배드리고, 천수경을 외우고 반야심경을 외우고 해야 할 그런 것들을 그동안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이것은 우리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그리고 자경문(自警文) 이렇게 합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이렇게 합해서 부르는데 이걸 또 우리 출가 수행한 사람들은 사미계(沙彌戒)를 받기 전에 사미계를 받기 위한 준비로써 이 세 가지의 책을 하나로 묶어서 반드시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그다음에 계초심학인문, 발심수행장, 자경문 이런 순서로 우리가 밟아 나간다면은 출가 수행자의 어떤 그 공부 순서를 그대로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하다보니까 우연히 그런 순서가 자연스럽게 잡혀져서 그 요즘 우리 불자님들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기상천외한 기술을 통해서 앉은 자리에서 접속만 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시에 들을 수 있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우리 불자님들도 전부 전문가가 되고 프로가 다 되었다하는 그런 생각도 들고 비록 이 글이 출가 수행자를 위한 수행 지침서이지만 근래에는 불자들을 위한 그런 그 교양대학, 또는 불교대학 이런 데에서도 상당히 강의를 많이 해요.
그리고 사찰에서도 신도님들을 상대로 한 그런 강의도 심심찮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만치 일반 신도님들도 수준이 높아지고, 말하자면 전문가적인 그런 입장으로 많이 이렇게 지식이, 불교에 대한 지식이, 그리고 관심이 높아졌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뭐 그런 분위기 따라서 저희들 염화실에서도 강의를, - 출가자들을 위한 수행지침서이지만 - 이것을 우리 사부대중 모두가 함께 한번 살펴보고 공부하고 또 보통 세속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생활지침서로서 또는 수행하는 입장이라면 더욱 더 수행하는 지침서로서 참고할 바가 많고 또 깨우칠 것이 많다 라고 하는 그런 그 입장에서는 참 좋은 공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우리나라의 불교를 중흥시킨 근래의 중흥조로서는 당연히 경허 스님을 치지요. 경허 스님 밑에 아주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나와서 지금 우리 나라 불교를 이렇게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경허 스님이 나오시기 까지는 사실은 조선 중엽의 배불정책, 그 다음 조선말의 그야말로 불교가 지리멸렬해서 등불이, 불교라고 하는 등불이 거의 꺼지지 않았나 할 정도로 그렇게 참 미미한 그런 그 불교였었는데 경허 스님이라고 하는 그런 걸출한 도승이 나타나서 불교를 중흥시켰습니다.
그 분의 제자로서 수월 스님, 혜월 스님, 만공 스님, 한암 스님 등등 아주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이 배출되었지요.
그런 선지식들을 배출하신 경허 스님께서 평생을 이 초발심자경문을 열심히 읽으셨다는 그런 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저희들도 어릴 때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 꼭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만치 이것은 무슨 처음 출가한 어린 사미다, 아니면 뭐 수행이 상당히 된 중견 수행자다, 아니면 원로다, 이런 것을 떠나서 평생 삶의 지침서로 또는 수행의 지침서로 이렇게 삼아도 손색이 없는 그런 아주 뛰어난 가르침이다 라고 하는 것을 경허 스님께서 입증해주셨다 이렇게 해도 과언이 아니죠. 참 경허 스님의 삶을 우리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볼 때 참 이런 그 막 출가해서 사미들이 공부하는 것을 평생 독송하고 늘 의지하면서 살았다 하는 것.
이것이 오늘의 경허 스님을 경허 스님 이게 한 그런 좋은 밑받침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이 될 정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출가 수행자나 재가 신자나 상당히 취할 것이 많고 귀 담아 들을 것이 많으리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은 고려 보조(普照) 스님께서 저술하셨는데 우리 나라 신라는 당연히 원효스님을, - 한 분을 꼽는 다면 - 원효 스님을 꼽고, 고려는 또 많은 조사 스님들이 계시지마는 또 한 분을 꼽는다면 첫 손가락에 보조 지눌 스님을 꼽고, 그 다음 조선 시대에도 아무리 배불 정책 때문에 불교가 힘을 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많은 조사 스님들이 계시지만 첫 손가락을 꼽는 분이 이제 서산 스님이시죠.
그래서 신라의 원효와 고려의 보조와 조선의 서산 스님, 이렇게 칩니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라고 하는 오늘 공부할 이 글은 바로 고려 불교를 대표하는 보조 지눌(普照 知訥:1158~1210) 스님께서 저술하신 글입니다.
아주 짧지요. 짧지마는 제목이 초심학인들을 경계하는 글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 초심학인들을 경계하는 글이다.
학인 이라고 하는 것은 문자를 공부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불교에서는 수행하는 사람, 불법을 연마하는 사람, 불법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 모두를 학인이다 이렇게 봅니다.
처음 출가해서 수행하려고 마음 낸 사람들을 잘 경계하고 잘 지도하고 또 온갖 말과 행동거지는 어떻게 해야한다는 어린 사람들에게 일러주는 자상한 잔소리이자 가르침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이것은 수선사(修禪社), 지눌(知訥) 스님 말씀을 조금 부연해서 말씀을 드리면 그야말로 고려의 대표적인 고승이시니까 보조(普照) 스님 또는 지눌(知訥) 스님 우리는 흔히 보조 스님 이렇게 말을 하는데 목우자(牧牛子), 여기서 우리 교재에는 해동사문(海東沙門) 목우자 (牧牛子) 술(述) 그렇게 해놓았는데 호를 스스로 ‘소를 먹이는 사람’이런 뜻으로 목우자 (牧牛子)라 이렇게 불렀죠. 성은 정씨(鄭氏)이고 8세에 출가를 했답니다. 그래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지마는 어떤 특별한 스승 밑에서 무엇을 공부했다 하는 것은 크게 나타나 있지 않고 육조 단경을 보다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다는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 팔공산(八公山) 거조사(居祖寺), 거조암이라고도 하는데 - 팔공산 거조암, 오백 나한 절로 유명하죠. - 거기에 들어가서 정혜를 익혔죠.
그리고 많은 도반들을 모아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을 거기서,- 거조사(居祖寺)에서 - 쓰고 그 거조사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지리산 상무주암 에 들어가서 인연있는 사람들을 많이 모으고 공부를 더욱 더 해서 결국은 송광사, 지금의 송광사이지요. 그 때에는 송광산(松廣山) 대길상사(大吉祥寺)라고 그렇게 했는데 거기서 많은 도반들을 모아놓고 ‘ 정말 우리가 고려 불교의 어떤 잘못된 점들을 반성하고 제대로 수행자 다운 수행을 하자.’라고 하는 어떤 결사를 하게됩니다.
그것이 소위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이고 그래서 그 결사운동은 바로 송광사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결사 운동이라는 게 뭐 요즘 같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무슨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도반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조용히 아주 스스로 경책하면서 피나는 수행을 하는 것으로써 결사운동이라 이렇게 보았습니다.
그게 바람직하죠. 자기 자신이 충실할 때, 자기 자신이 본래의 뜻에 아주 충실할 때 그것이 곧 세상을 향한 큰 운동이 됩니다.
무슨 자연보호운동도 사실 그렇지요. 뭐 어떻게 하자, 어떻게 하자 하고 현수막을 들고 길거리로 나서고 신문에다 이름을 내서 뭘 하자고 이렇게 외치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이 정말 자연보호를 위한 철저한 실천행이 있을 때, 그리고 그 가정에서 있고, 그 친척에서 있고, 그 이웃에서 있고 이렇게 해서 차츰 차츰 실천행이 확산되어 갈 때 그 때야 말로 진짜 자연보호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리라고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뭐 국민들을 어떻게 계도하겠다, 또 어떻게 가르치겠다하는 것도 윗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피나는 실천수행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이 따라오게 되고 정화가 되고 하는 그런 원리라는 것이죠.
보조 스님께서 이 정혜결사운동을 하신 모습만 보더라도 송광사 그 길상사라고 하는 거기에 들어가서 그야말로 승속을 막론하고 정말 제대로 불교를 일으키고 불교수행에 뜻을 같이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피나는 정진을 정말 모범을 보인, 피나는 정진으로서 모범을 보인 그 일이 그대로 결사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 운동을 통해서 그야말로 불교가 빛을 발하게 되는 그런 아주 훌륭한 사례를 남겼습니다. 스님은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까 그 모인 곳을 수선사(修禪社)라고 그렇게 - 그때는 수선사라고 하는 그런 말을 썼었는데 - 지금도 송광사(松廣寺)를 가면 대웅전 위에 수선사(修禪社)라고 하는 선방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는 승보종찰(僧寶宗刹) 이렇게 하지요.
통도사(通度寺)를 불보종찰(佛寶宗刹) 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기 때문에 그래서 불보종찰(佛寶宗刹) 그렇게 하고 해인사(海印寺)는 또 대적광전(大寂光殿), 다른 사찰로 치면 대웅전에 해당하는데 대적광전 위에 또 대장경을 모셔 놓은 장경각(藏經閣;국보 제52호)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또 제일 위에다 모셨지요. 그래서 그 곳을 법보종찰(法寶宗刹) 이렇게 하듯이 송광사(松廣寺)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그런 선방을 대웅전 보다 더 높은 곳에다 지어놓고 거기서 수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수행을 하고 일상생활을 할 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바로 수행자들이 앉아서 수행하는 바로 그 밑에 부처님이 계시고 수행자는 부처님 위에 앉아있습니다.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얼마나 참 정신을 차리고 수행을 하겠습니까?
분위기부터 그렇게 만들었다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참 수행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은 그런 수행을 할 때 하나의 규칙을 정해야 되겠다 해서 그 때 만들어진 청규(淸規)입니다, 청규(淸規).
사찰에서 어떤 생활 규칙을 청규라 그러죠. 맑을 청(淸)자 법 규(規)자 써가지고 청규(淸規)라 그렇게 합니다.
그야말로 백장청규(百丈淸規)가 있고 선원청규(禪院淸規)가 있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수행지침서이자 또 일반인들에게는 생활 지침서로도 활용이 될 수가 있고 그 당시로서는 수선사의 청규(淸規)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지눌 스님이 지었던 거죠.
또 지눌 스님은 이 계초심학인문이라고 하는 청규와 아울러서 금강경(金剛經), 육조단경 (六祖壇經), 화엄론(華嚴論), 화엄합론(華嚴合論) 이라고 해서 이통현장자(李通玄長者)가 화엄경을 해석한 아주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화엄론과 대혜(大慧)스님의 어록, 그 중에 서장(書狀)을 지칭하는데 대혜스님의 어록등을 의지해서 수행의 어떤 그 바른 길을 갔다하는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보조 지눌 스님은 워낙 고려 불교를 대표하는 분이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의미있는 책이 바로 계초심학인문이고 그리고 그만치 그 당시로서 참 활용이 잘 되었던 것이고 그때 그렇게 정혜사에서 수행청규로 썼던 그런 책이 그 이후로 스님들 사회에서, 사찰에서 반드시 이 청규, 계초심학인문 이라고 하는 이 청규에 의해서 모든 생활을 해나갔고 어떤 수행의 지침으로 삼았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까지 - 지금 800년이상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날 까지 - 행자실에서나 또 사미들이 공부하는데에서나 초발심자경문을 반드시 공부하게 되어있고 당연히 또 외우도록 되어있습니다.
이건 뭐 그냥 듣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외우도록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래서 행자들이 사미계(沙彌戒)를 받을 때 이 초발심자경문을 외우는 것으로써 시험을 치기도하고 그렇지요. 승려사회에서는 너무 너무 아주 소중한 경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이니까 처음 마음낸 사람들을 경계한 글이니까 이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해석을 또 해보자면 ‘초심으로 돌아가자.’하는 그런 뜻도 됩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처음에는 참 계획을 잘 세우죠. 연초에 그 해 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어릴 때 또 자기가 뭐 큰 꿈을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서 이러한 인격자가 되겠다하는 그런 계획도 세우고, 친구와 친구와의 사이나, 또 가족들의 사이나, 또 자기 자신이 인생의 좀 더 획기적으로 바꿀려고 하는 새로운 어떤 설계를 했을 때의 어떤 각오나 이런 것들이 다 초심인데 처음에는 생각들을 잘 하고 계획들을 잘 세우죠. 각오도 잘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월이 가다보면 해이해지고 퇴색이 되고 느슨해지고 이래서 급기야는 잊어버리게 되고 ‘내가 언제 그렇게 생각했던가?’할 정도로 사람들이 풀어지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자.’이런 말을 잘 하죠.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그 초심을 항상 견지하고 굳게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서 경허 스님께서는 평생을 그렇게 초발심자경문을 열심히 외우시면서 수행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 초발심자경문을 잘 외워가지고요 절에서는 도량석을 할 때, 노스님이 도량석(道場釋)을 할 때에도 이 초발심자경문을 아주 낭랑하게 외우면서 도량석하는 그런 예들도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誡初心學人文(계초심학인문)
誡初心學人文(계초심학인문) 海東沙門(해동사문) 牧牛子(목우자)述(술)
夫初心之人(부초심지인)은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親近賢善(친근현선)하야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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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를 올리면서 해동사문(海東沙門) 목우자(牧牛子) 술(述) 이렇게 했는데 해동은 당시 신라나 고려나 조선 시대까지도 우리 나라를 해동이라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다 동쪽에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해서 표현한 말이죠.
사문(沙門)이란 출가한 수행자를 사문, 이렇게 부릅니다. 뭐 사문에도 여러 가지 말을 씁니다마는 출가한 수행자, 이것은 불교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고 바라문교에서도 사문이다, 이런 말을 써요.
그래서 사문, 바라문, 나중에 사문은 불교에서 쓰기 때문에 사문은 불교용이고, 바라문은 바라문들의 용어이다 이렇게 불리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목우자(牧牛子)는 아까 설명 드린 대로 보조스님, 지눌 스님의 호입니다. 목우자 (牧牛子)가 저술했다 이런 이야기죠.
夫初心之人(부초심지인)은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親近賢善(친근현선)하야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夫初心之人(부초심지인)은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부(夫), 대저 부(夫) 자, 이건 글 처음 시작할 때 흔히 놓는 그런 글자입니다.
初心之人(초심지인)은, 글자대로라면 처음 마음 낸 사람은, 초심학인, 뭐 그렇죠. 여기서는 불교에 출가를 해서 수행하겠다고 막 사찰에 들어온 사람들, 행자나 사미(沙彌)에 해당되겠지요.
그런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初心之人(초심지인)이다 이거죠. 그래서 출가하지 않다하더라도 정말 수행을 좀 제대로 하겠다하고 마음 낸 사람들, 처음 마음 내었을 때 그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뜻입니다.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親近賢善(친근현선)하야
그랬어요.
수(須)는 반드시, 꼭, 여하한 일이 있어도, 모름지기
원리악우(遠離惡友) 멀리 떠나라, 누구를 악한 벗을.
여기서는 악한 벗을 했는데 친구를 말한다라기 보다는 스승, 선지식, 자기에게 영향을 끼칠 그런 사람들을 악우(惡友)라고 통칭 그렇게 말합니다. 물론 친구 사이도 다 포함 되겠지요.
친구와 아울러서 스승될 만한 사람들, 삿된 생각을 한 그런 스승, 소견이 바르지 못하고 좀 이제 저의가 안좋은 그런 어떤 그 세속적인 야욕이 있다든지, 무슨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있다든지 그 다음에 어떤 불교에 바른 수행길 보다는 어떤 삿된 생각을 하는, 무슨 신통을 얻겠다든지 어떤 능력을 갖추어가지고 세상에 한번 나가서 뭘 어떻게한다든지 하는 그런 꿈을 가진 스승들이 간혹 있어요 보면은. 옛날에 우리 한국 불교에도 보면은, 왕이 되려고 엉뚱한 그런 생각을 해서 절에 들어와서 어떤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있습니다. 이 악우라고 하는 말 속에는 꼭 뭐 어떤 눈에 드러나는 나쁜 짓을 해서라기 보다 스승으로서 스승답지 못한 그런 스승들, 그런 사람들을 멀리 해야겠지요.
정말 부처님께 귀의해서 부처님이 가르쳐 준 가장 바람직한 길, 세상에 모범이 되는 그런 인생 수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소견이 잘못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곤란하죠.
이건 출가한 사람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웃을 잘 만나야되고 세상의 스승을 잘 만나야되고 또 불교에 귀의했다고 해서 무조건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덮어놓고 추종하고 덮어놓고 믿는 그런 사례들이 많지요. 그러다가 낭패를 보지요. 참 잘 살펴야됩니다.
겉으로 번지르하게 출가수행자 같다고 해서 다 출가 수행자도 아니구요. 그 속이 어떤지 잘 알아야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바른 소견을 갖지 못한 스님이거나 그런 스승이라면 가차없이 당장에 떠나야죠.
원리(遠離).
그런 사람이 악우입니다. 사회적으로 사회법에 걸리는 나쁜짓을 꼭 해서 라기 보다는요.
그런 나쁜 벗을 떠나고, 스님들도 그렇지만 도반들도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불교를 공부해도 영 삿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은 당장에 거리를 두어야겠지요.
악우를 멀리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라
그 반대로 친근히 해야할 사람은 현선(賢善), 어질 현(賢) 자 착할 선(善) 자인데 이건 이제 그야말로 선지식이죠.
훌륭한 스승, 훌륭한 지식, 좋은 가르침,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현선(賢善)한 사람.- 현한 사람, 선한 사람 이런 말입니다.-
어진 선지식, 착한 선지식 그런 이들을 친히 가까이 해야죠.
그야말로 안개 속을 이렇게 길을 가는데 당장에 옷이 젖지는 않지마는 차츰 차츰 옷이 축축히 젖어 오듯이 악한 사람을 가까이 하거나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거나 하면 당장에는 변화가 없다 손치더라도 차츰 차츰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 말이 많지요. 근묵자흑 (近墨者黑) 이라,
먹을 가까이 한 사람은 검은 먹물이 튀게 되어있다. 좋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인연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글
향을 쌌던 종이에는 향기가 나고
생선을 묶었던 새끼에는 비린내가 난다.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인연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 인생이 향기로울 수도 있고 우리들 인생이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하는 그런 그 참 천하의 명언을 부처님이 남기셨잖습니까?
이게 흔한 말 같고 쉬운 말 같고 간단한 이야기고 하지만 제일 큰 일이고 하기 때문에 아마 처음 출가한 사람에게 첫째 조항으로 이렇게 청규로 내린 것 같애요.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래서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그랬습니다. 개차(開遮)니라 거기까지가 한 단락인데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오계나 십계 등을 받아서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지범개차를 잘 할 줄 알아야하느니라
그랬습니다.
오계, 십계 이건 이제 일반 신도들은 보통 오계(五戒)를 받고 그 다음에 보살계(菩薩戒)라고 해서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지요.
출가한 이들은 십계(十戒)를 받습니다.
여기에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를 받아서 한 걸로 봐서는 아마 처음에는 오계를 주었던 것 같애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 다음에 십계를 다 주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은 십계를 바로 줘요. 오계를 주고 한참 있다가 십계를 주는 것이 아니고 바로 십계를 줍니다.
십계를 주면 오계가 그 속에 다 포함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이걸 출가인들 중심으로 하면은 사미십계(沙彌十戒), 사미니십계(沙彌尼十戒)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오계는 일반적으로 많이 아는 신도들에게도 관계되는 그런 오계(五戒)죠.
불살생(不殺生)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불투도(不偸盜)
도둑질을 하지 말라.
그 다음에 불음계라 해서 재가 오계는 이 불음계(不淫戒)가 불사음(不邪淫)으로 되어 있구요.
출가한 사람은 불음으로 아예 음욕에 빠지지 말라, 음행을 하지 말라 이렇게 출가한 사람들에게는 하고 재가한 사람들에게 오계는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그렇게 하는데 그것은 결국 자기 사람이 아닌 남과의 문란한 그런 이성교제를 경계하는 그런 내용들이죠.
그 다음에
불망어(不妄語)
거짓말 하지 말라
불음주(不飮酒)
술을 마시지 말라.
이것 하나 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는데에는 거기에 따르는 말이 많습니다. 뭐 거짓말도 어떤 거짓말은 하고 못하고 이런 것도 있고, 술에 따르는 - 술 그 자체는 음식이다 보니까 잘못이 없는데 술을 마셔서 정신이 잘못되니까 이러 이러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간음도 하게 되고 살생도 하게 되고 어떤 거사의 이야기가 거기에 또 따르죠.
수행을 잘 하고 있다가 모처럼 집에 왔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가지고 있는데 이웃집 닭이 한 마리 넘어왔다, 그래서 세속에 나온 김에 그 닭을 잡아서 삶아 먹었다는거죠. 그런데 이웃집 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떻습니까?
술을 한잔 한 김에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래서 도둑질 했지요, 살생했지요, 등등 이런 것들이 술을 마심으로 해서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아예 못 먹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 난 김에 거기까지가 오계인데
십계(十戒)는
불착향화만불향도신(不着香華만不香塗身) 이런 말인데 그거는 이제 장신구를 몸에 지니거나 향을 바르거나 향기 나는 것 그런 것을 가지고 몸을 치장하는 것, 이게 이제 세속 사람들은 별 문제가 안된다고 하더라도 출가한 사람들은 자기를 꾸미자고 하는 것이니까 외향으로 꾸미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게 맞지가 않겠지요.
불가무창자불왕관청(不歌舞唱自不往觀聽) 이런 말이 있는데
노래나 춤을 추지 말라.
노래하고 춤추는데 가지도 말라 그런 말이 있어요.
그 다음에
부좌와고광대상(不坐臥高廣大床) 이란 게 있는데
넓고 큰 평상에 앉거나 눕지 말라 그런 말이 있어요. 그건 너무 근사한 평상이나 침대를 쓰게 되면 그건 옛날에 귀족이나 왕들이 하는 일이지 수행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그것도 경계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불비시식(不非時食)이라고 해서 정오 이후에 말하자면 때 아닌 때에 식사를 하지 마라, 어떤 음식도 먹지 마라 그랬습니다.
음식을 때 아닌 때에 자꾸 먹어 버릇하면 대중생활에 있어서 특히 대중생활에 있어서 그게 감당을 할 수가 없는 거죠.
보기도 그렇구요.
딴 사람 수행하고 있는데 한쪽에 가서 배고프다고 뭘 라면을 삶아 먹는다든지 아무거나 먹는다든지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이 된다면은 그것이 대중 통제가 될 수가 없지요. 그런 것들입니다.
그 다음에
불착금은전보(不着金銀錢寶)
금은 제보를 모으거나 쌓아두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건 금이나 은이나 요즘 같으면 돈도 되겠지요. 그런 돈 될 만한 재산 같은 것 이런 것도 쌓아두지 말라. 수행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멀리 하고, 있는 것도 베풀어 버리고 버려야할 그런 입장인데 그런 것을 우정 모으거나 쌓아 둔다고 하면 그건 수행자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잘 지키도록 처음에 열 가지 계를 줍니다. 그것이 사미계인데 그게 오늘날 수행자들의 생활에 그것이 적용이 제대로 되느냐 안되느냐 이런 것은 간단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수행자라고 하고,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수행자가 안되거나 수행자가 못되거나 아니면 아직도 그런 수행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거나 그런 것이다 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물론 시대에 따라서 최소한의 필요한 것은 갖추어야되겠지만 그런 점이 계율의 문제에 크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나오는 말이 오계와 십계 등을 받아가지고 지범개차(持犯開遮)를 잘 해야된다.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지범개차를 잘 할 줄 알아야된다, 선지(善知), 잘 알아야된다 그랬어요.
지(持)는 계를, 살생하지 마라 하면 살생을 철저히 안하는게 가질 지(持) 자의 뜻이고, 범(犯)은 말하자면은 계를 깨는 것입니다. 범한다, 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지키는 것의 반대죠.
그러니까 범(犯)하는 거예요. 이제 잘 가지기도 해야되지마는 잘 범할 줄도 알아야합니다. 이게 다른 종교의 계율하고는 다른 점입니다.
범(犯)할 때에는 범(犯)할 줄 알아야 되는거죠. 잘 파계할 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개차(開遮) 이게 좀 문제인데
연다고 하는 것은 방편으로서 말하자면은 어떤 부작용을, 계에도 뭘 하지 말아라 하면 거기에 어떤 부작용이 따르게끔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열어놓는 겁니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열어놓는거죠. 그러니까 살생보다는 거짓말이 가볍잖아요. 그런면은 그럴 때에는 거짓말은 하더라도 살생은 안하도록, 그러면은 거짓말을 열어놓는 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열 개(開)자가 되는 겁니다. 이건 잘못하면 방편으로 여는 것이기는 하지마는 부작용도 또 많이 따르죠. 그래서 그걸 적절하게 잘 할 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선지(善知)라고 앞에다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 차(遮) 자는 막을 차(遮) 자인데 이거는 본래의 개(開)보다도 더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술 마시지 마라 그러면은 도박도 하지 말고, 담배도 하지 말고, 마약도 하지 마라 이런 것이 저절로 따르게 돼요. 지금 계율에는 도박이니 마약이니 담배니 이런게 없습니다. 그 저 남방 불교 스님들은 보면 담배, 또 일본 스님들을 보면 담배를 잘 피우고 남방 불교 스님들, 태국 같은데 가보면 스님들이 그냥 법당에 앉아서 담배 피우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보면 참 모양이 아니죠. 계율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본래의 율문에는 없는 말인데, 담배가 또 중간에 생긴 것이구요, 없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확대해서 해석하는거야.
그게 차(遮) 입니다. 막을 차(遮) 자.
그런 것들이 많지요. 그런 것들이 많고.
그러니 열 것도 많고 사실 막을 것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이제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잘 해야된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기도 하고 뭐 이런 것들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꼭 조문에 나타난 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그건 이제 개(開)를 잘 할 줄 아는 게 못되는거죠.
그래서 여기서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
지(知) - 가지고 범하고 여는 일을 잘 알아야 한다. - 고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 융통성 있는 가르침이고 꼭 우리가 마음에 새겨둬야 할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범개차(持犯開遮)를 잘 알아서 해야 된다고 이렇게 했는데 이걸 이제 또 과용을 한다든지, 오용을 한다든지 해서 그래서 필요 이상의 어떤 개(開)와 차(遮)를 그렇게 해가지고 함부로 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선지(善知).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잘 알아서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여기서 조건으로 달고 있습니다.
오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첫 시간에 보조 스님에 대한 말씀과 첫머리
夫初心之人(부초심지인)은 須遠離惡友(수원리악우)하고 親近賢善(친근현선)하야
受五戒十戒等(수오계십계등)하야 善知持犯開遮(선지지범개차)니라.
여기 까지 했습니다.
한번 새겨 볼까요?
대저 초심의 사람들은 모름지기 악한 벗을 멀리 떠나고 어질고 착한 이를 친히 가까이 해서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등을 받아서 가지고, 범하고, 열고, 막는 것을 잘 할 줄 알아야 하느니라.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동참을 하셔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법문 녹취 : 明星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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