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맹아 극락왕생 하거라
사랑하고 귀여웠던 꼬맹이를 산에 묻고 가슴이 답답 하구나.
7년전 어느날 가게집 아저씨가 누가 맡기고 간 강아지라고
요크셔 테리어 한마리를 키우라고 하셔서 집에있는 같은종의 강아지가
2마리와 다른종 1마리가 있어 염려 했으나 인연이 될려고 우리집에
잘적응 하고 살아갔다.
우리집에서 대장 노릇을 하면서 순돌이(종이 다른 강아지)와 영역 다툼
을 하여 순돌이를 강릉 딸네로 보내고,순탄한 정복자로써 기강을 세워
가던중,주인의 판단 착오로 꼬맹이를 시집 보내게 되였다.
워낙 영리하고 예뻐서 새끼를 얻기 위한 욕심으로...
수의사가 3~4년 되었다고 건강 하다고 했는데,후에 안산으로 이사간
단골 주치수의사의 말은 7~8세 라니 이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63일후 예쁜 강아지 3마리를 수술하여 낳았습니다.
이때부터 꼬맹이(이 이름은 큰 아들이 막네같고 귀여워서 작명한 것)는 엄마로서 임무에 충실 하였습니다.몸이 약간 아프기에 안산으로
이사간 병원을 물어물어 가니까 나이가 7~8세라고 하면서,
정성것 치료를 해주었다.
그 후로 새끼 1마리는 분양 하고,두마리는 수컷은 "뚱",동생은 밍키
라 이름를 지어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기존의 있는 한마리는 "하마"이고,그 새끼는 "해피"이다.
하마는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면서 약으로 살고 있고 나이는 15세이며
해피는 날때 부터 장애견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3년전 대수술을
하였다.
꼬맹이는 나의 기쁨조(각시의 표현)였고,나는 꼬맹이의 믿음 이였다.
어느날 술을 한잔하고 귀가 했는데 여니때 같으면 달려와서 스킨쉽
과 뽀뽀를 하고 야단 일텐데,거리를 두고서 오지를 않는다.
술을 싫어 하기는 각시와 같아서 각시의 귀여움을 받기도 했다.
06년5월 부터 기관지가 약해서(나이 많은 걸 시집 보냈으니)안산
중앙동물 병원으로 계속 치료 받으러 다녔다.
꼬맹이는 내가 죽인거나 다름이 없다.
07년2월1일이 나의 만 62세되는 날이라 여행을 하기로 각시와
약속이 되어 있었다.그날 꼬맹이 약이 없어서 안산에가서 약을 지어
와서 애들한테 단단히 이르고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났다.
2월3일날 꼬맹이가 이상 하다고 해서,심각하게 생각을 하지않고
약만 잘먹이라고 했다.4일날 또 연락이 와서 술에 취한 상태라서
그날 밤12시경 각시가 운전을 하고 집에 왔다.
와서보니 세상에 이럴수가!
꼬맹이는 기운이 없고, 나를 봐도 오지않고,밥도 먹지 않고,
불러도 처다 보지도 않고,초롱 초롱하던 눈 망울은 간곳이 없고,
압뿔사!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아침10시 조금넘어 안산병원에 가서 주사와 약을 타오고,ㅇㅇㅇ이
라는 주사약을 사서 놓으라고 해서, 아침 저녁으로 수의사가 되었다.
시시각각 달라진다,
상태가 않좋다.원망의 눈망울 같기도 하고,걱정 하지말라는 눈망울
이기도 하고,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2월8일 오후6시에 비상등을 켜고,안산 병원에 도착하여
사랑하는 꼬맹이를 앉고서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내 마음을 그 누가
알꼬?! 눈물이 너무나와 운전을 할수가 없어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꼬맹이가 눈을 감으니 핸드폰에서 일곱시라고 한다.
2007년2월8일 오후7시 우리의 꼬맹이가 극락왕생 한 날이다.
내 생일 7일 후.
향을 피우고,반야심경을 붓으로 써서 극락왕생을 빌고
오늘(2월9일)오전 어머니 곁에 묻어 주었다.
죽어서 우리어머니 랑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꼬맹아!
아저씨랑 아줌마랑 우리가족은 너를 한번도 으리 가족이
아니였다고 생각한 일이 없으니까 극락왕생 하여
다음생에는 인간으로 테여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면서
눈물이 나와 오늘은 이만 줄인다.